본문 바로가기

Tales

Nosebleed

코피가 난다.

처음 몇 번은 코피가 흘러서 입술에 닿으면 코피가 난다는 걸 알았다.

지금은, 코피가 코 속을 흐르기 시작할 때 알 수 있다.

티슈를 두어 장 뽑아서 옆에 놓고 앉아

한 장을 집어 반을 찢는다. 결대로.

찢은 반쪽을 다시 가로로 길게 반을 접어서 돌돌 말아

접히지 않은 쪽으로 코를 막는다. 접힌 쪽은 머리가 크니까.

남은 반쪽을 다시 가로로 길게 반을 접어서 돌돌 말아 둔다.

코 끝에, 휴지에 따뜻하게 젖어나오는 코피가 느껴지면

젖은 것을 빼고 새 것으로 코를 막는다.

옆에 둔 티슈 중 한 장은 두 번 접어서 젖은 휴지를 올려둔다.

코를 막을 티슈를 두 개 더 말아 둔다.

 

짜증이 난다.

코피가 나면, 최소한 10분은 사라진다.

젖어나오는 속도를 보니 더 걸릴 수도 있겠다.

잠자는 시간도, 일어나는 시간도

나가는 시간도 정해 두고 사는데

코피가 나면, 그런 것들을 정해 봐야 무슨 소용인가 싶다.

젖은 티슈를 빼고 세 번째 티슈를 꽂는다.

 

망했다.

준비할 시간이 점점 적어진다.

사실 망한 건 아니지만, 망하고 싶다.

망했다고 말하고 싶다.

코피 때문에 오늘을 망쳤다고, 소리지르고 싶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짜증이 난다.

젖은 티슈를 빼고 네 번째 티슈를 꽂으며 일어난다.

 

마음만 바쁘다.

허둥대는 와중에 코를 막은 티슈가 걸리적거린다.

눈물이 난다.

다시 벽에 주저앉는다.

젖은 티슈를 빼고 다섯 번째 티슈를, 아무렇게나 구겨서 코에 집어넣는다.

 

'왜 하필 지금이지?'

'왜 하필 오늘이지?'

'내가 뭘 잘못했지?'

 

코피가 나면 세상이 내 발목을 잡는 것 같다.

코피 따위와 이토록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내가 불쌍하다.

심지어 이기지도 못하는 내가 한심하다.

 

한참 멍하니 있자니 티슈 끝에 맺혔던 코피 한 방울이 바닥에 떨어진다.

젖은 티슈를 빼고 여섯 번째 티슈를 구겨넣는다.

마지막이길 바라며, 눈물을 닦고 일어난다.

'Tal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Feel the Ground  (0) 2023.11.29
Attraction  (0) 2023.11.28